in re incerta

아르곤 본문

아르곤

primolevi 2021. 2. 27. 23:53

프리모 레비,『주기율표』, 「아르곤

 

우리가 숨쉬는 공기 속에는 이른바 비활성 기체라고 하는 것들이 있다. 이것들은 박식하게도 그리스어에서 따온 진기한 이름을 갖고 있는데, 각각 '새로운 것'(네온), '숨겨진 것'(크립톤), '움직임 없는 것'(아르곤), 그리고 '낯선 것'(제논)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들은 정말로 활성이 없어서, 그러니까 자신들의 처지에 만족하고 있어서 어떤 화학 반응에도 개입하지 않고 다른 원소와 결합하지도 않는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비활성 기체는 수세기 동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다만 '낯선 것'(제논)이 극도로 탐욕스럽고 활발한 플루오린과 잠깐 동안 결합하도록 하는 데 성공한 일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업적이 너무나 뜻밖의 일로 여겨져서 그 화학자는 노벨상까지 받았다. 또 이러한 비활성 기체를 가리켜 귀貴한 가스라고도 한다. 물론 여기서 모든 귀한 가스는 정말 활발하지 못한 것인지, 또 모든 비활성 가스는 귀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활성 기체는 희유稀有 가스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 가운데는 공기의 1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상당히 많은 양이 존재하는 아르곤, 곧 '움직임 없는 것'이 있는데도 말이다. 다시 말해, 그 양은 이 지구상에서 생명체의 흔적이 유지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이산화탄소보다도 스무 배 또는 서른 배나 더 많은 양이다. 

 

'뜻밖의'를 사용해 만들 수 있는 가장 멋진 문장 같다. '어처구니없게, 맥없이 주어진 노벨상'이 떠올라서 자연 슬며시 웃음을 짓게 된다. 프리모 레비는 늘상 평범한 단어를 정확한 자리에 위치시켜서 사람을 웃긴다.

 

내가 알고 있는 게 얼마 되지는 않지만 우리 선조들은 바로 그러한 기체들과 비슷한 데가 많다. 그들 모두가 물질적으로 활발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은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아주 활동적이었거나 그랬어야만 했다. 먹고살아야 했고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지배적인 도덕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내면의 정신만큼은 열심히 움직이기보다는, 세상사와 무관한 생각, 재치 있는 대화, 고상하고 세련되며 대가 없는 토론에 빠져 있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이 남겼다는 행적들이 제각기 성격이 다르면서도 모두 공통적으로 정적인 데가 있고, 품위 있는 절제의 태도, 큰 강처럼 흐르는 삶의 대열 변두리로 자발적으로(혹은 수긍하여) 물러서는 태도가 서려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고귀하고 활동적이지 않았으며 드물었다. 그들의 역사는 유럽과 이탈리아에 있는 다른 걸출한 유대인 공동체들에 비하면 빈약하기 짝이 없다. 우리 선조들은 1500년쯤 스페인에서 나와 프로방스를 거쳐 피에몬테에 닿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지명에서 유래하는 몇몇 전형적인 성씨를 보면 알 수 있다. 예컨대 베다리다/베다리드, 메밀랴노/몽멜리앙, 세그레(이것은 레리다를 지나서 스페인 북동부로 흐르는 에브로 강의 지류 이름이다), 포아/퐈, 카발리온/카바용, 밀리아우/미요가 그 예다. 몽펠리에와 님 사이에 있는 론 강 하구 근처의 뤼넬이라는 작은 도시 이름은 히브리어 야레아흐(달, 이탈리아어로는 루나)로 번역되었는데, 여기서 피에몬테 유대인 성씨인 야라크가 나왔다. 

 

pp.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