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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스마트폰의 죽음과 부활

primolevi 2017. 4. 26. 22:06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그러자 죽었던 이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 요한 복음서 11:43-44



밤에 폰을 충전시켜 놓았는데 확인해 보니 켜지지가 않았다. 배터리가 없다든가 충전을 해 달라든가 하는 표시고 뭐고 아무것도 안 뜨고 깜깜하다. 충전을 시켜놓아도, 전원버튼이랑 홈버튼을 같이 눌러보기도 하고 볼륨버튼을 같이 눌러보기도 했는데 반응이 전혀 없다. 죽은 것 같다.


네이버에 “아이폰 공식 서비스센터”라고 쳤더니 <투바 서울대 입구점>이라는 곳이 나왔다. 가깝다. 갔다.


직원은 임시 전원도 안 먹힌다, 전원 자체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집으로 치면 두꺼비집이 내려갔다”고 말했다. 그래서 상태가 어떻다는 건가? 어딜 수리해야 한다는 건가? 이렇게 묻고 저렇게 물어 직원의 의중을 겨우 파악한 결과 어떤 부분에 이상이 있는지 자체도 확인할 수 없고 이 폰을 수리할 방법도 없다는 거다. 못살린다. 죽었는데 설명을 못한다. 의문사다. 삼십 얼마를 주고 유상리퍼를 받는 수가 있다고 하던데, 매뉴얼에 있어서 말할 뿐 그도 그것이 실현가능성이 있는 선택지라 입에 올리는 것은 아닐 터이다. 약정 한 달 남기고 그 돈을 주고 유상 리퍼를 받을 이유가 어딨겠나.


어쨌거나 당장 스마트폰을 새로 살 순 없어서 예전에 쓰던 아이폰 4s를 들고 근처 올레 대리점에 갔다. 유심등록만 어떻게 바꾸면 될 줄 알았더니 4s는 3G고 고장난 녀석은 LTE라 요금제 전체가 바뀌어야 한단다. 여기서 그 일을 해줄 순 없으니 정 그렇게라도 하려면 올레플라자 관악점에 가라고 한다.


그래서 또 길을 나섰지. 그런데 올레플라자로 향하는 길에 우연히 다른 사설 서비스센터 간판이 떡하니 보였다. 잠시 망설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들렀다.


기사분에게 증상을 말하고 폰을 넘겨 드렸더니, <투바>에서 사망 선고를 받았던 스마트폰이 15초만에 켜졌다-_- 이런 시...


전원을 연결한 채로 전원버튼이랑 홈버튼을 같이 15초 이상 꾹 누르고 있으면 ‘강제 재부팅’인가 하는 것이 된단다. 나는 15초 이상인 걸 몰라서 몇 초 동안 꾹 눌러도 안돼서 고장 났다고 생각한 거였는데...


이것도 모르고 있었던 나도 잘한 건 없다. 그치만 멀쩡한 폰에 함부로 사망진단을 내리는 <투바>는 무엇인가? 나는 스마트폰 전문가가 아니다. 이게 왜 고장 난 건지, 고장이 어느 정도 수준이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전문가를 찾아간 거다. 잠자는 애를 병원에 데리고 간 나도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걔를 영안실로 보내는 전문가는...? 할 말이 없다.


이런 문제는 애초에 <투바>의 시스템 자체에 기인하는 것 같다. 잘은 모르지만 <투바>는 기사랑 상담사를 구분해서 기사는 수리만 하고 상담사가 고객을 담당하는 것 같다. 문제 상황이 기사에게 전달되고 나면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사안이 기사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것인지 전달해 봤자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인지의 문제를 왜 전문가가 아니라 기계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상담사가 판단해 버리냐는 것이다. 의사를 수술실에만 집어넣고 진료실에는 배치하지 않아도 되는가? 그러니 오진이 발생하는 것 아닌가? 죽지 않은 것을 죽여 놓았으니 결과적으로 라사로가 걸어다니는 것이 '기적'이 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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