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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와 숫자들 - 창세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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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와 숫자들 - 창세기

primolevi 2021. 2. 20. 14:21

그대는 내 혈관의 피

그대는 내 심장의 숨

그대는 내 대지의 흙

그대는 내 바다의 물

 

그대는 내 초라한 들판

단 한 송이의 꽃

그대는 내 텅 빈 하늘 위

휘노는 단 한 마리의 신비로운 새

 

포근한 그 품 속에

가득 안겨있을 때면

기도해요 난

지금이 내 마지막 순간이길

 

그대 그 아름다운 미소

그 밖에 난 없어요

유일한 나의 세계

매일이 하루 같은 나의 꿈

 

그대는 내 아침의 볕

그대는 내 공기의 열

수억 광년 어둠을 뚫고

날 부르는 별

 

그대는 날 이끄는 길

그대는 날 지키는 법

수백만 년 정적을 깨고

날 흔드는 손

 

포근한 그 품 속에 가득

안겨있을 때면

기도해요 난 지금이 내

마지막 순간이길

 

그대 그 아름다운 미소

그 밖에 난 없어요

유일한 나의 세계

매일이 하루 같은 나의 꿈

 

 

잠시의 틈이 있었고, 그런 다음에 다마루는 말했다.

"내가 훗카이도의 산 속 고아원에서 자랐다는 이야기는 지난 번에 했었지?"

"부모님과 헤어져 사할린에서 귀국한 뒤에 그곳에 들어갔다고 했어요."

"그 고아원에서 나보다 두 살 어린 아이가 있었어. 흑인 혼혈아였지. 아마 미사와 미군기지의 병사에게서 생긴 아이였을 거야. 어머니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매춘부거나 바의 여급이거나, 대충 그런 쪽이었겠지. 암튼 녀석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그 고아원에 들어왔어. 몸집은 나보다 한참 큰데 머리 돌아가는 게 상당히 느린 녀석이었어. 물론 주변 친구들한테 노상 괴롭힘을 당했지. 피부색이 다르니까 더 그랬을 거야. 그런 거, 알지?"

"대충 알죠."

"나도 일본인이 아니라서 어쩌다보니 그 녀석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떠맡게 되었어. 말하자면 그애나 나나 비슷한 처지였던 거지. 사할린 귀국 조선인과 검둥이하고 양공주의 혼혈아. 그야말로 카스트의 맨 밑바닥이지. 하지만 그 덕분에 단련은 좀 됐어. 아주 터프해졌지. 하지만 녀석은 그러지 못했어. 내버려뒀으면 틀림없이 그대로 죽었을 거야. 잔머리가 잽싸게 돌아가든가 아니면 싸움을 엄청 잘하든가, 둘 중 하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는 환경이었으니까."

아오마메는 말없이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녀석은 아무튼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었어. 한 가지도 똑바로 해내질 못해. 단추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자기 똥구멍도 제대로 닦질 못해. 그런데 조각 하나만은 뛰어나게 잘했어. 나무토막하고 조각칼 몇 자루만 있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멋진 목각작품을 만들었지. 밑그림도 뭣도 없이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그대로 정확히 입체적으로 만들어내는 거야. 그야말로 정교하고 리얼하게. 일종의 천재야. 진짜 대단했어."

"서번트." 아오마메는 말했다.

"그래. 나도 나중에 그걸 알았어. 바로 그 서번트 증후군이야. 그런 비범한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이 정말로 있어. 하지만 그런 게 있다는 건 그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지. 그저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라고만 생각했어. 머리는 둔하지만 손재주가 좋아서 목각을 곧잘 하는 녀석이라고 말이야. 게다가 왜 그런지 녀석은 늘 쥐만 깎았어. 쥐라면 기막히게 만들어내. 어디서 보건 정말 살아 있는 것처럼. 그런데 쥐 이외의 것은 하나도 안 만들어. 다들 뭔가 다른 동물 목각을 만들게 하려고 했지. 말이라든가 곰이라든가. 그것 때문에 일부러 동물원에도 데려갔을 정도야. 하지만 녀석은 다른 동물에는 조금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어. 그래서 다들 포기하고 그냥 쥐만 만들게 내버려뒀지. 자기 하고픈 대로 하라고 놔둔 거야. 그 녀석, 온갖 모습, 온갖 크기, 온갖 포즈의 쥐를 만들었어. 참 신기한 일이지. 왜냐면 그 고아원에는 쥐 같은 건 한 마리도 없었거든. 너무 춥기도 했고 먹이가 될 만한 게 전혀 없었으니까. 그 고아원은 쥐에게도 너무 가난한 곳이었던 거야. 어째서 녀석이 쥐에 그렇게 집착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어. ...... 어쨌거나 녀석이 만든 쥐가 적잖이 화제가 되어서 지역신문에도 실리고 그 쥐를 사겠다는 사람도 꽤 있었어. 그 일로 고아원 원장은, 가톨릭 신부였는데, 그 목각 쥐를 어딘가 민예품점에 맡겨서 관광객들에게 판매했어. 돈이 쏠쏠히 들어왔을 텐데 물론 그런 돈은 녀석한테 한 푼도 돌아가지 않았어. 그걸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고아원 윗분께서 적당히 어딘가에 썼겠지. 그 녀석은 그저 조각칼과 나무토막을 받아 공작실에서 하염없이 쥐만 만들었어. 하긴 힘든 밭일을 하는 대신 혼자서 쥐만 깎고 있으면 되니까 그것도 큰 행운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래서 그 사람은 어떻게 됐어요?"

"글쎄.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어. 나는 열네 살 때 고아원을 도망쳤고, 그뒤로는 줄곧 혼자 살았으니까. 곧장 연락선을 타고 본토로 건너왔고, 그뒤로는 훗카이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도 녀석은 작업대 앞에 웅크리고 앉아 열심히 쥐를 깎고 있었어. 그럴 때는 무슨 말을 해도 귀에 들어가질 않아. 그래서 작별 인사도 못했어. 녀석, 무사히 목숨을 부지했다면 아마 지금도 어디선가 쥐를 깎고 있을 거야.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하는 놈이었으니까."

아오마메는 조용히 그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금도 그 녀석이 이따금 생각나. 고아원 생활은 참 지독했어. 먹을 게 없어서 늘 배가 고팠고 겨울에는 끔찍하게 추웠어. 노동은 가혹했고 상급생의 괴롭힘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지. 하지만 녀석은 그런 생활을 딱히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던 거 같아. 조각칼 들고 혼자 쥐만 깎고 있으면 마냥 행복해 보였어. 혹시 누가 조각칼을 빼앗으면 반 광란상태가 되기도 했지만, 그것만 빼고는 정말 얌전한 녀석이었어. 어느 누구에게도 폐를 끼친 적이 없어. 그저 묵묵히 쥐만 만들었지. 나무토막을 손에 들고 한참 지그시 쳐다보면 거기에 어떤 쥐가 어떤 포즈로 숨어 있는지 녀석에게는 보인다는 거야. 그게 보일 때까지 꽤 시간이 걸렸어. 하지만 일단 보이기만 하면 그다음은 조각칼을 휘둘러서 그 쥐를 나무토막 안에서 끄집어내기만 하면 돼. 녀석이 곧잘 그랬거든. '쥐를 끄집어낸다'고. 그렇게 끄집어낸 쥐는 정말 금세라도 움직일 것처럼 생생한 거야. 녀석은 그러니까 나무토막 속에 갇혀 있던 가상의 쥐를 계쏙 해방시켜준 거였어."

"그리고 다마루 씨는 그 소년을 지켜줬구요."
"그래, 내가 원해서 그랬던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입장에 서게 됐어. 그게 내 포지션이었지. 일단 포지션이 주어지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걸 지키는 수밖에 없어. 그게 그 세계의 룰이었어. 그래서 나는 그 룰에 따랐지. 이를테면 괜스레 녀석의 조각칼을 빼앗는 놈이 있으면 쫓아가서 때려눕혔어. 나보다 나이가 많건 덩치가 크건 상대가 한 사람이건 두 사람이건 상관없이 무조건 때려눕혔어. 물론 내가 뻗어버리는 일도 있었지. 수없이 많았어. 하지만 이기고 지는 건 문제가 아냐. 때려눕혔건 내가 뻗었건 나는 반드시 조각칼을 다시 찾아다가 녀석에게 돌려줬어. 그게 중요해. 이해해?" "이해할 거 같아요." 아오마메는 말했다. "하지만 결국 그 친구를 버려두고 떠났군요." "나는 혼자 살아가야 하는 사람인데 언제까지고 녀석 곁에서 돌봐줄 수는 없었어. 그럴 여유는 나한테 없었어. 당연하지." 아오마메는 다시 한번 오른손을 펴고 뻔히 바라보았다. "다마루 씨가 작은 목각 쥐를 들고 있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그게 그 친구가 만든 거였어요?" "그래. 나한테 작은 것을 하나 줬어. 고아원 도망칠 때 그걸 가져왔지. 지금도 갖고 있어."
"다마루 씨, 왜 지금 그런 이야기를 내게 해주는 거죠? 당신은 별뜻 없이 자기 얘기를 하는 타입은 아닌 거 같은데.""내가 말하려는 것 중 하나는 지금도 자주 그 녀석이 생각난다는 거야." 다마루는 말했다. "꼭 한 번 보고 싶다거나, 그런 게 아냐. 별로 만나고 싶진 않아. 이제 새삼 만나봤자 할말도 없고. 다만 녀석이 한눈 한번 팔지 않고 나무토막 속에서 쥐를 '끄집어내는' 광경은 내 머릿속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어. 그건 내게는 소중한 풍경 중 하나야. 항상 내게 뭔가를 가르쳐줘. 혹은 뭔가를 가르쳐주려고 해. 혹은 뭔가를 가르쳐주려고 해.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것이 필요해. 말로는 잘 설명이 안 되지만, 의미를 가진 그런 풍경. 우리는 그 뭔가에 제대로 설명을 달기 위해 살아가는 그런 면이 있어. 난 그렇게 생각해."

"그게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근거 같은 게 된다는 얘기인가요?"

"아마도."
"내게도 그런 풍경이 있어요."

"그걸 소중히 간직하는 게 좋아."

"소중히 간직할게요." 아오마메는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할 게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한 너를 지켜주겠다는 거야. 때려눕혀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게 누구건 쫓아가서 때려눕힐 거야. 이기고 지는 건 상관없어. 중간에 너를 내버리거나 하진 않아."

"고마워요."

몇 초 동안의 평온한 침묵이 있었다. 

"한동안 집 밖에 나가지 마. 한 걸음이라도 밖에 나가면 거기는 정글이라고 생각해. 알겠어?"

"알았어요." 아오마메는 말했다.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에야, 아오마메는 자신이 그것을 힘껏 움켜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1Q84』 BOOK2 pp.43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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