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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이야기 (18)
in re incerta
생일은 항상 비슷한 것 같아서, 기록을 안 해 두면 기억도 잘 안 나고... 겸사겸사 일기도 다시 좀 써 볼까 하고. 1. 박완서 선생님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다 읽음. "한국 문학의 가장 크고 따뜻한 이름"이라는 소개말이 참 적절하다 느낌. 2. 독서기록 매체를 로 바꿔 봄. 글씨 크기 조절이라든가 불편한 점이 있음. 맥북 전용 어플이 있으면 좋겠는데... 3. 아스날도 지고, 평택도 짐... 특히 평택이 어제 결승 2경기에서 마무리를 못 한 게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던 것은, 3경기에서 이기면 생일에 맞춰 우승을 선물로 받을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 제1국 장고 대국에 나선 스미레도 1경기에서 자신에게 패배를 안겼던 김민서를 2경기와 3경기에서 연속으로 극복해 내어 분위기가 좋았는데... 스미레..
https://youtube.com/shorts/pul5QpHLEB0?si=ao-uhNoNfmcse7rt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 끝에 학생회관에 있는 명상 센터에 찾아 간 적이 있다. 그래도 아침 9시 반인가, 10시인가, 하는 수업에 꽤 재미를 붙이고 꾸준히 다녔는데, 2달을 넘기고 3달째 다니면서 보니 매달 1일이 될 때마다 프로그램 자체가 초기화되는 것 같았다. 그러게. 그러고 보니 '중급자 코스'나 '상급자 코스' 같은 것이 따로 없었네. 어느 정도 훈련이 되었으니 이제 다음 레벨을 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에도 영원히 고만고만한 프로그램만 반복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세 달째는 어영부영 다니다가 그만두었던 것 같다. 아마 수강생 숫자가 충분하지 않아서 코스를 나눌 여력이 못 되고, 그런데 매달 새로운 수강생은 들어오고, 그러니 입문자 중심의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게 되는 것 같..
친구를 보러 울산에 갔다. 잘 보지도 않는 넷플릭스 아이디를 같이 쓰고 있었는데, 어느덧 그의 어머니, 그의 매형까지 합류하셔서 졸지에 남의 집 안마당에 발 뻗고 누운 모양이 되었다. 철저히 그가 주인인 계정이어서(내 몫은 내가 내고, 나머지 세 사람 몫을 그가 내는 듯하다), 그와 나는 이름으로 적히고, 어머니는 '어머니', 매형은 '매형'이다. 어느 날 밤 그가 생각이 났다. 가도? 했더니, 언제든, 이란다. 백수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이다. 저녁쯤 도착해서 맥주나 한 잔 하고 이야기나 하려 했는데, 대뜸 울산에서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한다. (울산에는 예전에 아버지께서 회사 일로 가 계셨지만, 나는 가 본 적도 아는 바도 없다. 그래서 나도 대뜸, 그의 호기에 지지 않으려) 울산에는 아무것도 없지..
긍지와 자부심은 둘 다 자신에 대한 긍정이다. 하지만 사전에 의존하지 않고 말하자면, 자부심은 순전히 자기 자신에게만 유래를 두지만, 긍지는 내가 만들어내지 않은 기원과 역사를 기꺼이 내 것으로 수용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시간 속에 내던져진 많은 것들이 마모되거나 쇠락할 뿐인 것과 달리, 긍지는 기름칠한 목가구처럼 의식적으로 시간을 먹여 만들어진다. 그래서인지 긍지는 마음의 상태이면서도 누구나 감지할 수 있는 객관성을 획득한 것 같다. 햇살이 두드려 말린 빨래에서 나는 따뜻한 향기처럼, 고양되었지만 고압적이지는 않은 공기의 농도로, 우리는 긍지를 알아챌 수 있다.
1. 교수는 "텍스트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친다. 익숙히 듣던 이야기 같다. 그런데 듣다 보면 뭔가가 자꾸 걸린다. 나도 텍스트가 지닌 함축을 충분히 음미하기 전에 자기 이야기부터 해버릇하면 배우는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교수는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도 전체적으로 보아 자비의 원칙보다는 교조주의의 느낌이 든다. 왜 그럴까? 자기 편에 대해서는 위대하고 엄청나고 저명하다는 수식어구를 붙이지만, 상대편에 대해서는 '대학 2학년 수준보다 못한'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아서? 관련 주제 연구자들의 성취는 너무 쉽게 평가절하하고, 자기 수준은 너무 높게 평가해서? 물론 그런 부분도 실망스럽다. 상대편에게 적절한 존중을 보이지 못하는 사람과는 설령 전반적으로 나와 의견이 비슷하다고 할지라도 ..
1. 목요일 저녁 석계역에서 1호선을 탔는데, 내가 탄 칸에 나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한참 전 버스에서는 이어폰으로 들리던 음악이 잠시 중단되고 그 사이에 문자 알림음이 울렸는데, 나는 마치 남의 일처럼 못 들은 체하고 있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토할 것 같은 울렁거림이 아니라, 대체로 마음이 겉으로는 엄격한 기숙학교의 사감처럼 지시봉으로 칠판을 두드리며 좌절과 포기의 가능성을 주의깊게 나열하지만(그러니 버스에서 내린 다음 길을 건너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라!), 그러면서도 전혀 예상치도 못한 행운이 닥칠 경우를 뒤에서 세어 보는 짓을 멈출 수 없을 때 느끼는 울렁거림이었다. 그러니까, 메시지는, 확인하는 순간 거절이거나 환대로 결정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였다. 나는 결과를 알기를 원했지만, 까딱 ..
3. 이영도의 『오버 더 초이스』를 읽고 있다. 휴가 차 부산에 갔다가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서 『오버 더 호라이즌』과 나란히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사실 나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는데, 친구가 발견해서 알려 주었다. 네가 좋아하는 작가 아니냐고. 그래도 그런 친구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밤새 읽고 싶은데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부터 내 진정한 꿈은 독서가였는데. 4. 친구네는 '부산 풀코스' 운운할 정도가 되지 못했다. 그네들도 이사 온 지 반 년쯤 되는 풋내기 부산 시민인 데다, 애초에 둘 다 맛집 탐방 같은 걸 하고 다닐 위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정을 뻔히 아는데도 먹고 싶은 게 뭐냐고 큰소리를 땅땅 친다. 말하면 데리고 갈 데도 딱히 없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