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re incerta

2021.4.2. (금) 본문

이야기

2021.4.2. (금)

primolevi 2021. 4. 2. 02:10

1. 교수는 "텍스트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친다. 익숙히 듣던 이야기 같다. 그런데 듣다 보면 뭔가가 자꾸 걸린다.

나도 텍스트가 지닌 함축을 충분히 음미하기 전에 자기 이야기부터 해버릇하면 배우는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교수는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도 전체적으로 보아 자비의 원칙보다는 교조주의의 느낌이 든다. 왜 그럴까? 자기 편에 대해서는 위대하고 엄청나고 저명하다는 수식어구를 붙이지만, 상대편에 대해서는 '대학 2학년 수준보다 못한'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아서? 관련 주제 연구자들의 성취는 너무 쉽게 평가절하하고, 자기 수준은 너무 높게 평가해서? 물론 그런 부분도 실망스럽다. 상대편에게 적절한 존중을 보이지 못하는 사람과는 설령 전반적으로 나와 의견이 비슷하다고 할지라도 같이 묶이고 싶지 않으니까. 옳고 그름을 따지는 데 치열하고 엄정하기보다는 일단 '자기 전공'과 '자기 편'이 더 중요한 사람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고전을 제대로 읽으면 현대의 관점에서 벗어나 우리가 상식으로서 견지하는 관점의 의미를 올바르게 물을 수 있다는데, 말이야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런데 이 교수가 그렇게 고전을 읽어서 진심 '현대의 의미'를 물을 생각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오히려 '고전기의 지적 유행'에 갇혀서 거꾸로 '현대와 대화'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근현대를 절대시하는 것도 싫지만, 거꾸로 모든 진리가 자기가 공부한 사상가의 텍스트 안에 들어 있다는 식의 태도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관점을 새로 얻을 수 있는 측면도 있을 테고, 그건 우리가 열심히 공부해서 발굴해야 측면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오늘날의 모든 중요한 물음에 대한 답이 그 텍스트 안에 이미 마련되어 있다는 건 아닐 거다. 어떤 텍스트도 만능은 아니다. 미처 답을 못해주거나 잘못된 답을 주는 경우도 있을 거다. 그러니 텍스트가 담고 있는 통찰력을 배우는 동시에, 그 한계를 지정해주는 것이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연구자들의 역할이다. 

그런데 교수는 자기가 공부한 텍스트가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품고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런 사람과는 누구도 좋은 대화를 하기 어렵다. 떠받드는 자들이 그 주변에서 대화 비슷한 것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교수의 그런 믿음은, 대개 질문의 의미나 무게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 그래서 상대가 무슨 질문을 하든, 맥락에 맞든 맞지 않든 자기가 공부한 것만 반복해서 외우는 앵무새처럼 보이게 된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부끄러워하는데, 정작 본인은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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