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re incerta

2021.03.05. (금) 본문

이야기

2021.03.05. (금)

primolevi 2021. 3. 5. 17:14

1. 목요일 저녁 석계역에서 1호선을 탔는데, 내가 탄 칸에 나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한참 전 버스에서는 이어폰으로 들리던 음악이 잠시 중단되고 그 사이에 문자 알림음이 울렸는데, 나는 마치 남의 일처럼 못 들은 체하고 있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토할 것 같은 울렁거림이 아니라, 대체로 마음이 겉으로는 엄격한 기숙학교의 사감처럼 지시봉으로 칠판을 두드리며 좌절과 포기의 가능성을 주의깊게 나열하지만(그러니 버스에서 내린 다음 길을 건너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라!), 그러면서도 전혀 예상치도 못한 행운이 닥칠 경우를 뒤에서 세어 보는 짓을 멈출 수 없을 때 느끼는 울렁거림이었다. 그러니까, 메시지는, 확인하는 순간 거절이거나 환대로 결정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였다. 나는 결과를 알기를 원했지만, 까딱 잘못 상자를 열었다가 고양이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의 두려움이 더 컸다. 그래서 (종종 그러듯) 자처해서 의도적인 무지 상태로 남았고, 그것을 '거절/환대'의 상태로, 열리지 않은 상자 안의 '죽은/살아 있는' 고양이로 남겨 두었다. 지하철 객차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는 주머니 안에 '죽은/살아 있는' 고양이를 숨기고서 그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열차와 함께 홀로 깜빡이고 덜컹거렸다. 

 

2. 아버지는 '다시 이야기하지 않으려 했다'고 하시면서 결국 이야기를 또 하셨다. 나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 척하면서 어제 기차에서 읽었던 문장을 떠올리고 속으로 흐흐 웃었다. "유대인은 크리스마스 때 트리 장식을 하지 않는 사람, 살라미소시지를 먹어서는 안 되지만 그래도 먹는 사람, 열세 살이 되면 히브리어를 조금 배워야 하지만 그러고 나면 잊어버리는 사람이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무기력하게 지고 마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왠지 마음이 따뜻하고 웃기다. 예배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다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떨어뜨려 딸을 아연실색케 했고, 한사코 고사했지만 결국 등떠밀려 안수 집사가 되고 만 윤 아지야처럼. 

 

3. 삶은 예상치 못한 우연과 사고, 신의 장난과 불가해함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렇기에 인생을 계획하려는 모든 시도는 자기기만적이라는 확신이 너무 어릴 때부터 너무 강하게 내 안에 뿌리박혀서, 나는 그 반대 방향으로, 그러니까 모든 종류의 계획에 대한 혐오로, 미래의 내 모습에 대한 의식적인 무지 상태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지금으로서는 파편적이고 불규칙하고 무의미해 보일지라도 언젠가 먼 미래에는 울퉁불퉁하지만 완성된 독특하고 아름다운 결합물로서, 내 앞에 계시처럼 나타날 것으로 막연히 믿었다. 내 삶을 내가 아닌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떠넘기며, 해야 할 결정을 유예하고 있다는 감각은 내내 불길한 징후처럼 울렸지만, 매끄럽게 조각된 인생에 대한 불신은 불안해하면서도 그 감각을 무시할 수 있게 해주었다.

어머니는 학교에 가는 초등 6년생 나를 배웅하고 목욕가방을 챙겨 목욕탕으로 향하셨다. 건널목 등교 도우미로 봉사하던 어린이들마저도 노란 깃발을 접고 학교로 돌아가는데, 그보다도 뒤처져서도 실내화 주머니를 흔들며 세월아 네월아 만사태평한 걸음으로 등교하는 애가 있어서 세상에 무슨 경우인가 싶어서 자세히 봤더니 당신 아들이었단다. 그런 식으로 실내화 주머니를 흔들며 지금에 온 것은 아닐까. 친구의 말처럼 이미 늦었고, 서두르더라도 우린 이미 졌다. 그걸 제대로 인정해야 한단다. 맞다. 그래도 우리는 졸음을 참으며 오래 통화하고 진취적인 결론을 낸다. 나는 조각조각을 이제부터라도 내 손으로 이어붙여 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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