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re incerta

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 본문

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

primolevi 2023. 3. 23. 00:40

머리말 우리는 축의 시대의 통찰을 넘어선 적이 없다

 

어느 세대나 자기 시대가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믿겠지만, 우리의 문제들은 특히 다루기가 어렵고 미래는 점점 불확실해지고 있다. 우리의 많은 난관 뒤에는 사실 더 깊은 정신적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20세기에 우리는 전례 없는 규모로 폭력이 분출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서로 해치고 상처를 내는 능력을 우리가 이룬 특별한 경제적·과학적 진보에 뒤처지지 않고 함께 발전해 왔다. 우리에게는 호전성을 제어하여 안전하고 적절한 테두리 안에 가두어 둘 지혜가 부족한 것 같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첫 원자폭탄은 현대 문화의 찬란한 성취 한복판에서 허무주의적 자기 파괴의 현장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제 우리는 땅을 성스럽게 여기지 않고 단순하게 '자원'으로 보기 때문에 환경 재앙의 위험에 처해 있다. 뛰어난 과학기술적 재능에 뒤처지지 않는 어떤 정신적 혁명이 없으면, 이 행성을 구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순전히 합리적이기만 한 교육으로는 불충분하다. 우리는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대규모 대학교가 강제수용소와 함께 우리 가까이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우슈비츠, 르완다, 보스니아, 세계무역센터 파괴는 우리가 모든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성불가침한 존재라는 감각을 잃어버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계시하는 음울한 예이다. 

그런 인간 존중의 마음을 키우도록 도와주어야 할 종교조차 종종 우리 시대의 폭력과 절망을 반영하는 듯하다. 우리는 거의 매일 종교적 동기에서 비롯한 테러, 증오, 불관용의 사례를 목격한다. 전통적인 종교 교리나 관례가 탇장성이 없거나 신용할 수 없다고 여겨 미술, 음악, 문학, 춤, 운동, 약물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초월적 경험을 얻으련느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우리 모두 환희와 황홀의 순간을 찾는다. 평상시보다 훨씬 더 충만하게 휴머니티(인간성) 속에 잠겨들어 내면 깊이 감동을 받고, 순간적으로 우리 자신을 초월해서 고양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의미를 찾는 생물이다. 다른 동물과는 달리 삶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지 못하면 쉽게 절망에 빠져버린다. 어떤 사람들은 성스러워지는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1970년대 말부터 세계 여러 곳에서 영적 부흥이 이루어졌다. 우리가 흔히 '근본주의'라고 부르는 전투적인 신앙심은 깨달음을 얻으려는 탈근대적인 시도의 한 표현일 뿐이다. 

이런 곤경에서 빠져나오려 할 때, 나는 우리가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가 '축의 시대(Axial Age)'라고 부른 시기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시기가 인류의 정신적 발전에서 중심 축을 이루기 때문이다. 대략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200년 사이에 세계의 네ㅐ 지역에서 이후 계속해서 인류의 정신에 자양분이 될 위대한 전통이 탄생했다. 중국의 유교와 도교,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이스라엘의 유일신교, 그리스의 철학적 합리주의가 그것이다. 축의 시대는 붓다, 소크라테스, 공자, 예레미야, 『우파니샤드』의 신비주의자들, 맹자, 에우리피데스의 시대였다. 이 뜨거운 창조의 시기에 영적·철학적 천제들은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인간 경험을 개척해 나아갔다. 그들 가운데 다수는 이름을 남기지 ㅇ낳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어 지금까지도 우리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는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축의 시대는 기록된 역사 가운데 지적·심리적·철학적·종교적 변화가 가장 생산적으로 이루어졌던 때로 꼽힌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근대를 창조한 '서구의 대전환' 이전에는 이에 비길 만한 시대가 없을 것이다.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았던 축의 시대 현자들이 어떻게 우리의 현재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왜 우리가 공자나 붓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가? 물론 이 머나먼 시대를 공부하는 것은 정신의 고고학의 한 과정에 불과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이 세계의 현실을 반영하는 혁신적인 믿음을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축의 시대의 통찰을 넘어선 적이 없다.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위기의 시기에 사람들은 늘 축의 시대를 돌아보며 길을 찾았다. 물론 이 시기의 발견들을 다르게 해석했을 수는 있겠지만, 한 번도 그것을 넘어서는 데 성공한 적은 없다. 예를 들어 랍비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은 모두 축의 시대에 발전한 전통이 나중에 개화한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보겠지만, 이 세 전통은 모두 축의 시대의 전망을 재발견하고 그것을 자기 시대의 환경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 훌륭하게 번역해냈다. 

축의 시대의 예언자, 신비주의자, 철학자, 시인들이 워낙 앞서 나갔고 또 그들의 전망이 워낙 급진적이었기 때문에 뒷세대들은 그것을 희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 과정에서 축의 시대 개혁가들이 없애고 싶어했던 바로 그런 종교성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나는 근대 세계에서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본다. 축의 시대 현자들에게는 우리 시대가 귀기울일 만한 중요한 메시지가 있지만, 그들의 통찰은 오늘날 스스로 종교적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놀랍게, 심지어 충격적으로 들릴 것이다. 예를 들어 흔히 믿음은 어떤 교의에 속하는 명제들을 믿는 것이라고 여긴다. 실제로 종교적인 사람들은 흔히 '신자(believer)'라고 부른다. 마치 특정 종교의 어떤 조항에 동의하는 것이 그들의 주요한 특징이라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축의 시대 철학자들은 대부분 교리나 형이상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붓다 같은 이는 개인의 신학적인 믿음에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어떤 현자들은 신학에 대한 논의조차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것이 정신을 흐트러뜨리고 해를 입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현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서 기대하는 절대적 확실성을 찾는 것이 미숙하고, 비현실적이고, 잘못된 태도라고 주장했다.

축의 시대에 발전한 전통들은 모두 인간 의식의 한계를 밀고 나아갔으며, 인간 존재의 내면 깊은 곳에서 초월적 차원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것을 반드시 초자연적이라고 여겼던 것은 아니며, 대부분은 그것을 입에 올리기를 거부했다. 그 경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점을 존중하여 입을 다무는 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올바른 태도였다. 현자들은 물론 이런 궁극적 실재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종교적인 가르침을 의심 없이 또는 간접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었다.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모든 가르침을 경험적으로, 즉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검증하는 것이 필수였다. 앞으로 보겠지만, 사실 어떤 예언자나 철학자가 강제적인 교리를 고집하기 시작하는 것 자체가 보통 축의 시대가 동력을 잃는다는 신호였다. 만일 붓다나 공자에게 신을 믿느냐고 물었다면, 아마 그들은 약간 망설인 다음 아주 정중하게 그것은 적절한 질문이 아니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누가 이스라엘의 예언자 아무스나 에스겔에게 당신은 '유일신론자'냐고, 즉 오직 하나뿐인 신을 믿느냐고 물었다면 그들 역시 당황했을 것이다. 실제로 성경에서는 유일신주의에 관한 분명한 주장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흥미롭게도, 이런 교리적 명제 몇 가지를 목청 높여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외려 축의 시대의 핵심 정신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느냐였다. 종교의 핵심은 깊은 수준에서 자신을 바꾸는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축의 시대 이전에는 제의와 동물 희생이 종교적 탐구의 중심이었다. 오늘날 훌륭한 연극을 경험하는 것처럼 존재의 또 다른 수준으로 안내해주는 신성한 드라마에서 신을 경험한 것이다. 축의 시대 현자들은 이것을 바꾸었다. 여전히 제의의 가치를 인정했지만 거기에 새로운 윤리적 의미를 부여했으며, 정신적 생활의 중심에 도덕성을 갖다놓았다. 이른바 '하느님', '니르바나', '브라만', '도(道)'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비로운 삶을 사는 것이었다. 사실 종교가 곧 자비(compassion)였다. 오늘날 우리는 종교적인 생활 방식을 채택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 또는 '절대자'의 존재를 만족스럽게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 생각은 먼저 원칙을 세운 뒤에 적용한다는 의미에서 훌륭한 과학적 실천이다. 그러나 축의 시대 현자들이라면 앞뒤가 바뀌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먼저 윤리적인 생활에 헌신하라고 말했다. 형이상학적 신념이 아니라, 훈련을 받아 습관이 된 자비심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초월을 슬쩍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 변화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축의 시대 현자들은 제자들이 유익한 가르침을 얻어 정신이 고양되는 느낌을 약간 맛본 뒤 새로 힘을 얻어 평소의 자기 중심적인 삶으로 돌아가게 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목적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인간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모든 현자들이 공감과 자비의 영성을 설교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 중심주의와 탐욕, 폭력과 무례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로 죽이는 것만 잘못된 것이 아니다. 적대적인 말을 하거나 성마르게 행동해서도 안 된다. 나아가서 축의 시대의 거의 모든 현자들은 자비를 자기 민족에게만 제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떻게 해서든 전 세계로 관심을 확대해야 한다. 실제로 사람들이 자신의 지평과 공감을 제한하기 시작한다는 것 또한 축의 시대가 끝나간다는 표시였다. 각각의 전통은 각기 그 나름의 방식으로 '황금률(Golden Rule)' ― "네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마라." ― 을 정리해냈다. 축의 시대 현자들에게 종교란 정통적인 믿음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신성한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관대하게 행동하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

우리는 축의 시대의 이런 에토스(ethos)를 다시 발견해야 한다. 우리의 지구촌에서는 이제 편협하거나 배타적인 전망을 제시할 여유가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나라로부터 멀리 떨어진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자기 자신처럼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야 한다. 축의 시대 현자들은 목가적인 환경에서 자비의 윤리를 창조한 것이 아니다. 각각의 전통은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전에 없던 폭력과 전쟁으로 분열된 사회에서 발전해 나갔다. 실제로 종교적 변화의 첫 번째 촉매는 현자들이 주위에서 흔히 목격하던 호전적 태도에 대한 원칙 있는 거부였다. 축의 시대 철학자들은 마음에서 폭력의 원인을 찾아냈으며, 그 결과 내면의 세계로 뚫고 들어가 인간 경험에서 이제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영역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축의 시대의 일치된 결론은 인류의 정신적 탐구의 결과가 똑같았음을 웅변적으로 증언한다. 축의 시대 민족들은 모두 자비의 윤리가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에 창조된 모든 위대한 전통은 자선과 자비가 가장 중요하다는 일치된 결론을 냈는데, 이 점은 우리 인류에 관하여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해준다. 우리의 신앙이 다른 사람들의 신앙과 깊은 수준에서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나를 확인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이럴 때 우리는 우리의 전통을 떠나지 않고도 나름으로 추구해 오던 공감의 삶을 향상시키는 방식을 다른 전통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축의 시대의 성취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한다. 따라서 축의 시대 이전 고대의 종교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종교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었으며, 이 모두가 축의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회는 초기에 하나의 '최고신'을 믿었다. 이 신은 종종 '천신(天神, Sky God)'으로 불렸는데, 이 신이 하늘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신은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종교적 의식에서 희미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신이 '사라졌다'고 말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이 신이 더 젊은 세대의 더 역동적인 신들로 폭력적으로 대체되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보통 성스러움을 주위 세계나 자기 내부에 내재하는 것으로서 경험했다. 어떤 사람들은 신, 남자, 여자, 동물, 식물, 곤충, 바위 모두가 똑같은 신성한 생명을 공유한다고 믿었다. 이 모두가 만물의 존재를 유지하는 대단히 중요한 우주 질서에 종속되었다. 심지어 신들도 이 질서에 복종해야 했다. 신들은 인간과 협력하여 우주의 신성한 에너지들을 보존했다. 이 에너지들을 갱신하지 않으면 세계는 다시 최초의 공허로 빠져들 수도 있었다.

동물 희생은 고대 세계의 보편적인 종교적 관행이었다. 이것은 세계의 존재를 유지하는 힘이 고갈되었을 때 그 힘을 재생하는 방법이었다. 이때는 삶과 죽음, 창조와 파괴가 뗄 수 없이 얽혀 있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오지 ㄱ다른 생물이 자신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자신이 생존할 수 있음을 깨달았으며, 따라서 자기 몸을 내주는 동물의 자기 희생에 경의를 표했다. 그런 죽음이 없으면 생명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태초에 희생의 결과로 탄생했다고 상상했다. 어떤 사람들은 창조주가 용 ― 형체 없고 구분이 없는 것의 일반적 상징이었다. ― 을 죽여 혼돈에서 질서를 가져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의식적인 전례에서 이런 신화적인 사건을 재현하면,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성한 시간으로 들어간다고 느꼈다. 그들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최초의 우주 탄생을 재현하는 의식을 거행하여 자신들의 덧없는 필멸의 활동에 신성한 힘을 불어넣으려 했다. 이런 식으로 '활력을 얻지' 않으면, 즉 '영혼'을 부여받지 않으면 어떤 것도 오래 갈 수 없었다. 

고대 종교는 이른바 영속 철학(perennial philosophy)에 의지했다. 이 철학이 어떤 형태로든 대부분의 전근대 문화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철학에 따름녀 지상의 모든 인간, 대상, 경험은 신성한 세계에 있는 실재의 복제물 ― 창백한 그림자 ― 이다. 따라서 신성한 세계는 인간 존재의 원형이며, 그것이 지상의 어떤 것보다도 더 풍부하고, 더 강하고, 더 지속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기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영속 철학은 지금도 일부 토착 부족들의 삶에서 핵심적인 요소다. 예를 들어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은 '꿈꾸는 시간'의 신성한 영역을 물질 세계보다 훨씬 더 현실적으로 경험한다. 그들은 잠을 잘 때나 환상을 볼 때 꿈 시간을 잠깐 스쳐가듯 본다. 그러나 그 시간은 현실의 시간을 초월하며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상 생활의 안정된 배경을 이룬다. 일상 생활은 죽음, 흐름, 쉼 없는 변화 때문에 끊임없이 약해진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은 사냥을 나가면 '최초의 사냥꾼'의 행동을 모범으로 삼아 거기에 가까워지려 한다. 그는 최초의 사냥꾼의 강력한 실재에 사로잡혀 그와 완전히 결합되어 있다고 느낀다. 나중에 그 시원의 풍요로움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되면, 현실의 시간 영역이 자신을 흡수하고, 자신과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무(無)로 돌릴 것이라고 걱정한다. 고대 사람들도 그런 경험을 했다. 제의에서 신들을 모방하고 세속적 삶의 외롭고 덧없는 개인성을 버릴 때에만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이기를 그만두고 다른 사람들의 몸짓을 반복할 때 자신의 인간성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매우 깊은 의미에서 꾸미고 만드는 존재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연을 개선하여 이상에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영속 철학을 버린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노예처럼 유행의 명령을 따르고, 심지어 현재의 미의 기준을 복제하느라 자기 얼굴과 몸에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유명인 숭배는 우리가 여전히 '초인간성'을 체현한 모범을 섬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가끔 자신의 우상을 구경하려고 큰 노력을 기울이며, 그들과 한자리에 있으면 고양되어 환희에 젖는다. 또 우상의 옷차림과 행동을 모방한다. 이런 것을 보면 인간은 본래 원형적이고 모범적인 것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축의 시대 현자들은 이런 정신성을 더 진정한 형태로 발전시켜, 사람들에게 자기 내면에서 이상적이고 원형적인 자아를 찾으라고 가르쳤다.

축의 시대는 완벽하지 않았다. 여자들에게 무관심했다는 것은 가장 큰 결함이다. 이 정신성은 거의 모두 도시 환경에서 성장했다. 도시는 군사적인 힘과 호전적인 상업 활동의 지배를 받는 곳이며, 이곳에서 여자들은 시골 경제에서 누렸던 지위를 잃었다. 축의 시대에는 여성 현자들이 없었다. 설사 여자들이 새로운 신앙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허락받는 경우가 있었다 해도 보통은 주변에 머물렀다. 그렇다고 축의 시대 현자들이 여자들을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경우 그저 여자들의 존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이다. 그들이 '위대한 사람' 또는 '깨달은 사람'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이 '사람'은 '남자와 여자'를 아우르는 의미가 아니었다. 하지만 만일 누가 문제를 제기했다면, 대부분은 여자도 이러한 해방을 성취할 능력이 있다고 인정했을 것이다.

나는 축의 시대에 여자들의 문제가 주변적이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해 어떤 식으로든 지속적으로 논의를 하려 들면 혼란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문제를 거론하려 할 때마다 마치 내가 훼방을 놓는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가 그 자체로 연구를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축의 시대 현자들은 몇몇 교부처럼 철저한 여성 혐오자였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다만 그들 자신의 시대에 속한 존재로서 자신이 속한 성(性)의 공격적 행동에 몰두했기 때문에 여자들에 관해서는 깊이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을 뿐이다. 우리는 노예처럼 축의 시대 개혁가들을 따를 수는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이야마롤 오히려 축의 시대의 정신을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축의 시대 정신은 그런 종류의 순응이 사람들을 열등하고 미성숙한 자아에 묶어 둔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만인에 대한 보편적 관심이라는 축의 시대 이상을 확대하여 거기에 여성을 포함하는 것이다. 축의 시대의 전망을 재창조하려고 한다면 근대의 최고의 통찰들도 탁자 위에 꺼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축의 시대 민족들은 균일한 방식으로 진화하지 않았다. 각 민족은 각자 나름의 속도로 발전했다. 그들은 때때로 진정으로 축의 시대에 값할 만한 통찰을 얻었지만 그런 뒤에는 다시 물러서고 말았다. 인도 사람들은 늘 축의 시대 진보의 선두에 서 있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예언자, 사제, 역사가들이 마치 발작을 일으키듯이 간헐적으로 이상에 접근하다가, 마침내 기원전 6세기에 바빌로니아로 추방을 당하면서 특별한 창조성이 피어나는 짧고 강렬한 시기를 경험했다. 중국에서는 느리지만 점진적인 진보가 이루어져, 마침내 공자는 기원전 6세기 말에 처음으로 완전한 축의 시대 영성을 발전시켰다. 그리스인은 처음부터 다른 민족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갔다.

야스퍼스는 축의 시대가 실제보다 더 짧은 기간이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붓다, 노자, 공자, 묵자, 조로아스터가 모두 비슷한 시기에 살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현대의 학자들은 이들의 생존 시기를 바로잡았다. 그 결과 이제 조로아스터는 기원전 6세기가 아니라 훨씬 오래 전에 살았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러나 이런 운동 가운데 일부의 시기를 확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인도의 경우가 그러한데, 이곳에서는 역사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어 정확한 연대기적 기록을 남기려는 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인도의 학자들은 대부분 붓다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족히 백 년은 뒤에 살았다는 데 합의를 보았다. 도교의 현자인 노자도 야스퍼스가 가정한 것과는 달리 기원전 6세기에 살지 않았다. 노자는 공자나 묵자와 같은 시대 사람이 아닌, 기원전 3세기 사람인 것이 거의 확실하다. 나는 최근의 학문적 논쟁을 최대한 따라잡으려고 노력했지만, 현재로서는 이런 시기 획정 가운데 많은 부분이 오로지 추측일 뿐이며, 이 점은 앞으로도 확실히 알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축의 시대의 일반적인 발전 양상을 보면 이 중요한 이상의 정신적 진화에 관하여 어느 정도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이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따라가며 축의 시대 네 민족의 진전을 나란히 짚어볼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전망이 점진적으로 뿌리를 내린 뒤 절정에 이르다 마침내 기원전 3세기 말에 쇠퇴해 가는 과정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축의 시대의 선구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건물을 지을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 그 결과 각 세대는 이들이 처음 제시한 통찰을 자신의 독특한 환경에 맞추려고 노력했는데, 이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의 과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