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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종말에 관한 새로운 이론? 본문

종의 종말에 관한 새로운 이론?

primolevi 2017. 4. 26. 23:45

테드 창, 「일흔 두 글자」 中

『당신 인생의 이야기』, 256-262면

 

스크래튼은 필드허스트에게 이끌려 그의 저택 지하실로 내려간다. 거기에는 뒤뷔송과 질의 실험 장치들이 나열되어 있다. 뒤뷔송과 질의 실험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정자에 이상발달을 유도해 키워 대태아大胎兒로 만든다.

 1.1. 이렇게 만들어진 대태아는 성별 외에 어떤 개별적 특징도 보이지 않는다. 

2. 대태아가 어른 크기까지 성장하면  그 정자를 채취해서 같은 방법으로 다음 세대의 태아를 만든다.

3. (1-2)의 방법을 반복함으로써 모든 종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들을 검사한다. 

 

이렇게 탄생의 간격을 압축하는 방식으로 우리 혈통의 미래를 미리 엿볼 수 있다. 필드허스트가 말하는 ‘종의 안정성’ 검사는 바로 이를 가리킨다. 
그런데 필드허스트에 따르면 이 실험 결과 어떤 문제가 나타났다.

 

“많은 종을 테스트해보았지만 형태의 변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군. 그러나 인간의 정자로 만든 태아를 상대로 한 실험에서는 기묘한 결과를 얻었네. 다섯 세대 후의 남성 태아는 더 이상 정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여성 태아는 난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어. 불임 세대에서 대가 끊겼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스트래튼은 젤리 상태의 태아를 보면서 말했다. “각각의 과정을 되풀이할 때마다 생명의 본질 같은 것이 점점 더 희박해진 겁니다. 어떤 세대에 도달한 후에는 그것이 너무나도 희박해진 나머지 대가 끊어졌다고 생각한다면 논리적으로 아귀가 맞습니다.”

“뒤뷔송과 질도 처음에는 그렇게 추론하고 자기들의 테크닉을 개선하려고 시도했어. 그렇지만 예전 세대와 자손세대들을 비교해보아도 태아의 크기나 생명력에는 차이가 없었네, 정자나 난자 수도 전혀 줄지 않았어. 마지막 세대 바로 전의 세대까지는 처음 세대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생식력이 있었어. 그러다가 다음 세대에서 갑자기 불임이 되는 거야.

그것 말고도 이상한 점이 하나 더 있었지. 정자들 중에 오직 네 세대나 그보다 적은 수의 세대만을 포함한 것들이 있는 반면 이런 변이는 각기 다른 혈통간에만 나타났고, 동일 혈통 안에서는 관찰되지 않았다네. 아버지와 그 아들에게서 각각 채취한 샘플을 조사해보았는데, 그럴 경우 아버지의 정자는 아들의 정자에 비해 정확히 한 세대 더 많은 태아를 만들어냈어. 그리고 샘플 제공자들 중 일부는 노령이었다는군. 노인들의 샘플에 포함된 정자 수는 당연히 적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정자는 그보다 혈기왕성한 장년 아들들의 정자에 비해 한 세대 더 많은 태아를 포함하고 있었던 거야. 어떤 정자의 생식력은 정자 제공자의 건강 상태나 생명력과는 아무 연관이 없었어. 단지 그 제공자가 속한 세대에 달려 있었다는 얘기지.”

 

말이 좀 어려운데 집안에 따라 남은 세대 수가 다를 수는 있지만 같은 집안 내에서는 남은 세대 수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즉, A 집안에서는 다섯 세대, B 집안에서는 네 세대만에 혈통이 끊길 수도 있지만 같은 집안 안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 같은 지점에서 혈통이 끝나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우리 할아버지의 정자가 3세대를 남길 수 있으면 아버지는 2세대를 남기고 아들은 1세대만 남긴다. 할아버지가 3세대를 남기는데 손자 중 한 명이 2세대 이상을 남기는 경우는 없다. 

 

필드허스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심각한 표정으로 스트래튼을 보았다. “과학아카데미가 나와 접촉해 왕립학술원이 그들의 실험 결과를 재현할 수 없는지 문의해온 것이 바로 이 시점이었네. 양측은 서로 협력해서 일했고, 라플란드인에서 호텐토트 부족에 이르는 다양한 인종으로부터 채취한 샘플을 이용해 같은 결과를 얻어냈지. 이 결과가 암시하는 바에 관해서 우리는 일치되는 견해를 내놓았네. 인류라는 종에 내포된 세대 수는 정해져 있고, 앞으로 다섯 세대 후에는 종말을 맞을 거야.

 

어안이 벙벙하던 스크래튼이 반론을 시작한다.

 

“만약 그 해석이 옳다면 다른 종들에게도 비슷한 한계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한 어떤 종의 멸절은 한 번도 관찰된 적이 없습니다.”

필드허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네. 하지만 우리에게는 화석이라는 증거가 있어. 화석은 생물의 종이란 일정 기간 변화하지 않고 존속하다가, 돌연히 새로운 형태의 종들에 의해 대체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네. 천재지변설의 옹호자들은 멸종은 격렬한 지각 변동에 의해 일어났다고 주장하고 있지. 그러나 전성설前成說에 관해 우리가 최근 발견한 것을 감안하면, 생물의 멸종은 단지 해당 종의 수명이 다한 결과에 불과하다는 해석을 내릴 수밖에 없네. 바꿔 말해서 멸종은 자연사이지 사고사가 아니라는 얘기야.” 필드허스트는 손짓으로 그들이 좀 전에 들어왔던 문을 가리켰다. “이제 위층으로 올라가도록 하지.”

두 연장자들의 뒤를 따라가면서 스트래튼은 물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종은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요? 원래 존재하던 종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자연발생했다는 얘깁니까?”

“그건 아직 확실치 않네. 현재 자연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은 구더기나 연충蟲 따위의 가장 단순한 동물들뿐이네. 보통 열의 영향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지. 격변론자들이 가정하는 홍수, 화산 폭발, 운석 충돌 등의 사건은 모두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하네. 아마 그런 에너지가 물질에 끼치는 영향이 너무나 심대하기 때문에 몇 안 되는 조상들 안에 숨겨져 있던 하나의 생물 종을 통째로 자연발생시키는 건지도 모르겠군. 그렇다면 천재지변은 대량 멸종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향후 새로운 종들을 만들어낸다는 편이 옳겠지.”

실험실로 돌아오자 연장자들은 그곳에 놓여 있던 의자에 앉앗다. 스트래튼은 너무 동요된 탓에 앉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만약 어떤 천재지변에 의해 인류와 동시에 창조된 동물 종이 있다면, 그 종도 인류와 마찬가지로 수명이 다해가고 있을 겁니다. 혹시 인류처럼 마지막 세대에 다가가고 있는 종을 발견하셨습니까?”

필드허스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네. 종이 다르면 멸종 시기도 다르고, 이것은 해당 종의 생물학적 복잡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우리 의견이야. 인간은 아마 가장 복잡한 생물이니까 그 정자에 내포할 수 있는 세대 수가 더 적은 건지도 모르겠군.”

“같은 이유에서,” 스트래튼이 말을 이어받았다. “아마 그런 복잡성 탓에 인간은 인위적으로 촉진된 성장 과정에는 부적합한 건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실험에서 밝혀진 한계는 인간이라는 종의 한계가 아니라 실험 과정의 한계일 수도 있습니다.”

“매우 날카로운 지적이군. 현재 침팬지나 오랑우탄 같은 좀더 인간을 닮은 대상으로 한 실험도 진행중이라네. 그러나 그 의문에 대해 뚜렷한 해답을 얻을 때까지는 몇 년이 걸릴지 몰라. 만약 현재의 추측이 옳다면, 확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네.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해.”

“하지만 다섯 세대가 끝나려면 일 세기는 족히—“ 스트래튼은 문득 자신이 저명한 사실을 간과했음을 깨닫고 당혹감에 사로잡혔다. 모든 사람이 같은 나이에 부모가 되지는 않는 것이다.

 

필드허스트는 스트래튼의 표정을 읽은 듯했다. “정자 제공자의 나이가 같아도 샘플에 포함된 세대 수가 모두 똑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나보군. 어떤 가계는 다른 가계보다 더 빨리 종언에 다가가고 있는 거야. 남자가 늦게 아이를 낳는 집안의 경우 다섯 세대는 이 세기 이상 대를 이어갈 수 있지만, 이미 종언을 맞은 가계도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