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re incerta

프랭클린 포어, 『생각을 빼앗긴 세계』 본문

프랭클린 포어, 『생각을 빼앗긴 세계』

primolevi 2019. 8. 16. 22:49

p.228-229

이는 마셜 매클루언이나 스튜어트 브랜드 같은 사람들이 꿈꿨을 법한 일이다. 네트워크, 즉 테크놀로지로 하나가 된 글로벌 커뮤니티는 사람들을 갈라놓는 차이점들을 없앨 것이다. 하나의 책이 다른 책 안으로 녹아들 것이며, 복사해서 붙여넣기와 내용을 빌려오는 일이 흔해지면서 한때 각각의 책을 구별지어 주었던 차이가 사라질 것이다. "흥미롭게도 전 세계를 아우르는 도서관은 아주 아주 아주 거대한 하나의 단일한 텍스트가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한 권의 책이 되는 것이다." 케빈 켈리 자신도 인정하듯, 이는 종교적 이상이다. 켈리는 미래를 "만물의 에덴동산"이라는 비유로 설명했다. 이 같은 원죄 이전의 이상에는 정치적인 귀결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세상의 책들이 아름다운 한 권의 책으로 녹아들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반대 의견 역시 사라져버린다(이는 라이프니츠가 가졌던 이상이 수정, 업데이트된 것이다.). 독자들이 힘을 모아 주석을 달고 편집하여 공통된 의견에 도달한다. 네트워크의 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가장 의견이 분분한 논의도 합의점을 찾는다. 페이스북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쉽게 서로 연결되어 의견을 공유하게 함으로써, 단기적∙장기적으로 세상의 분쟁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이는 환상에 불과하다. 페이스북은 그들이 내놓은 이상과 완전히 반대편으로 사람들을 끌고간다. 페이스북은 일라이 패리서(Eli Praiser)가 "필터 버블"이라 부르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페이스북 알고리듬은 우리가 읽고 싶고 공유하고 싶어질 만한 콘텐츠를 보여준다. 그런 충동이 가져올 지적, 정치적 위험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이 알고리듬은 독자가 마음 속 깊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편향을 확증하게 하는 텍스트와 동영상을 부지불식간에 제공하지만, 사용자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지 모르는 반대 의견을 보여주지 않는다. 진보적인 사람들에게는 진보적인 견해가 잔뜩 등장하고, 채식주의자들에게는 채식주의 주장이 끝없이 나타나며, 대안우파(alt-right)에게는 대안우파들의 쓰레기 같은 주장만 주입되는 식이다. 페이스북은 사용자들이 노트북을 내던질 정도로 화를 돋굴 만큼 심한 반대 의견을 읽지 않도록 보호해 주지만, 이런 반대 의견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바꾸거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p.230

우리 시대는 서로 적대적인 이념으로 무장한 패거리들의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극한 대립으로 규정된다. 그렇지만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진 시스템의 근본 원인은 분열 그 자체가 아니다. 다양한 원인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순응이다. 페이스북은 두 진영의 벌집형 사고를 만들어냈는데 — 벌집에는 언제나 여왕벌이 있다 — 각 진영은 쉽게 동의하는 태도를 키우고 다른 의견을 처벌하는 생태계다. 벌집형 사고는,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는 능력을 약화시키고 자기편 노선을 강화하는 증거만 편향적으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지적으로 무력화된 사고다. 페이스북은 합의를 이루어냈지만, 약속했던 종류의 합의가 아니었다. 페이스북 네트워크의 힘은 세상을 하나로 만드는 대신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았다. 우리가 과거에 숭상하던 천재와 독창성에 아무리 단점이 많았다 해도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