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re incerta

프리모 레비, 『휴전』 본문

프리모 레비, 『휴전』

primolevi 2018. 5. 12. 14:47

이소영 옮김. 돌베개

 

pp.18-21 해방

부나-모노비츠 수용소의 병동 막사에 남은 우리 인원은 800명이었다. 이 중 약 500명은 러시아군이 도착하기 전에 병으로, 추위로, 기아로 죽었고, 200명은 구출되고 난 직후 수일 내로 죽었다.

첫번째 러시아 정찰대가 수용소에 모습을 보인 것은 1945년 1월 27일 정오 무렵이었다. 샤를과 나는 그들을 맨 먼저 알아본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우리 병실 동료들 중 제일 먼저 죽은 쇼마지의 시신을 공동 매장 구덩이로 옮기고 있었다. 이미 구덩이는 꽉 차 있어 더 이상 시신을 매장할 수 없었으므로 우리는 썩은 눈 위로 들것을 엎었다.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샤를은 베레모를 벗었다.

그들은 네 명의 젊은 기마병들로 기관총을 둘러메고 수용소를 경계 짓는 길을 따라 조심스레 전진하고 있었다. 철조망에 다다르자 그들은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소심하게 짤막한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그러고는 널브러진 송장들과 파괴된 막사들과 얼마 안 되는 우리 생존자들 위로 낯선 당혹감에 사로잡힌 시선을 던졌다.

우리에게 그들은 놀라우리만치 육체적이고 실제적으로 보였다. 거대한 말들 위에 앉아 공중에 매달린 것처럼(길은 수용소보다 높았다) 잿빛 눈과 잿빛 하늘 사이에 광폭하게 휘몰아치는 해빙기의 습한 바람을 맞으며 붙박인 듯 서 있었다.

우리가 지난 열흘 동안 꺼져버린 별들처럼 헤매고 다녔던 죽음으로 가득한 무無 — 이제 그것은 우리가 보기에 어떤 견고한 중심을, 응축된 핵을 찾은 것 같았고 실로 그러했다. 바로 네 명의 무장한 사람들, 그러나 우리를 겨누어 무장한 것이 아닌 사람들, 두꺼운 털모자 아래 투박하고도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한 평화의 전령들을 찾은 것이다. 

그들은 인사를 하지도, 미소를 짓지도 않았다. 음울한 광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고 입을 봉해버리는, 감히 무어라 할 수 없는 혼란스런 감정이 동정심과 더불어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바로 그 부끄러움이었다. 가스실로 보내질 인원 선발이 끝난 뒤, 그리고 매번 모욕을 당하거나 당하는 자리에 있어야 했을 때마다 우리를 가라앉게 만들던 그 부끄러움, 독일인들은 모르던 부끄러움, 타인들이 저지른 잘못 앞에서 올바른 자가 느끼는 부끄러움, 그런 잘못이 존재한다는 것에, 그런 잘못조차 존재하는 이 만물의 세상 속에 돌이킬 수 없이 자신이 끌어들어졌다는 것에, 그리고 자신의 선한 의지는 아무것도 아니거나 턱없이 부족하고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것에 가책을 느끼게 만드는 바로 그 부끄러움이었다.

그렇게 우리에게는 자유의 순간을 알리는 종소리조차 무겁고 폐쇄적으로 울렸으며, 우리의 마음을 기쁨으로, 동시에 추악함이 드러누운 우리의 기억들과 의식들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싶게 만들던 저 고통스러운 수치심으로 가득 채웠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의 과거를 지워버릴 만큼 그렇게 순수하고 좋은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또한 상처 자국들은 영원히 우리 안에,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의 기억 속에, 그 일이 벌어졌던 그 장소에 그리고 우리가 두고두고 하게 될 이야기 속에 남아 있으리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자유의 순간은 우리의 마음을 괴로움으로 가득 채웠다. 그 누구도 전염병처럼 퍼지는 치유될 수 없는 상처의 본성을 우리보다 더 잘 이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세대와 내 민족의 끔찍한 특권이기도 했다. 인간의 정의가 상처를 없애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상처는 마르지 않는 악의 샘이다. 그것은 가라앉은 자들의 몸과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고 그들을 비굴하게 만들고 영혼의 빛을 꺼뜨린다. 상처는 압제자들에게는 악명으로 되돌아가고 생존자들 속에서는 증오로 영속한다. 모든 이의 한결같은 바람과는 반대로 복수에 대한 갈증으로, 도덕적 굴종으로, 거부로, 피로로, 체념으로, 수천 가지 방식으로 돋아나는 것이다.

당시에는 잘 분간이 되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그저 죽을 것 같은 피로감이 갑자기 밀려오는 것이라고만 느꼈던 이런 상처들이 우리에게 자유의 기쁨과 함께 찾아온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가운데에는 구원자들을 향해 달려간 사람도, 엎드려 기도한 사람도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철조망을 무너뜨리는 동안 샤를과 나는 납빛 사지들로 가득 찬 구덩이 옆에 서 있었다. 그러고는 빈 들것을 들고 동료들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막사로 돌아왔다.

pp.21-25 틸레

남은 나절 동안은 내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에게 별반 놀랄 일도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그런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우리 방의 죽은 쇼마지의 침상은 곧 늙은 틸레가 차지했고, 내 두 프랑스 동료들은 역겨운 기색이 역력했다.

당시 내가 알던 바로는, 틸레는 소위 '붉은 삼각형'으로 독일인 정치범이었고 수용소에서 가장 나이 많은 축에 들었다. 그 때문에 당연히 그는 수용소의 귀족 계급에 속해 있었다. (적어도 마지막 몇 년간은) 육체노동을 하지 않았고 집에서 옷가지며 먹을 것을 받았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독일인 '정치범'들은 병동 막사에 수용되는 일이 극히 드물었고 한편으로 거기서 여러 특권을 누렸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가스실로 보내지는 '선발'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다. 자유의 순간이 왔을 때 틸레는 유일하게 남은 독일인 정치범이었기에, 도망치는 SS로부터 전염성이 높은 환자들이 있던 우리 병실 외에도 결핵 구역과 이질 구역을 포함하는 블록 20호의 카포 역할을 위임받았다. 

독일인답게 그는 굉장히 진지하게 이 임시 임무를 맡았다. SS부대가 떠나고 러시아군이 도착하기까지 열흘간, 각자가 기아와 추위, 그리고 질병과 마지막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에 틸레는 바닥이나 반합의 상태, (산 자든 죽은 자든 간에 한 사람에 하나씩 할당된) 담요의 수를 점검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영지를 부지런히 감찰했다. 우리 병실을 점검하던 어느 날에는 아르튀르에게 정리정돈과 청소를 잘한다고 칭찬하기까지 했다. 틸레의 색슨어 사투리는 커녕 독일어도 모르는 아르튀르는 그에게 "비외 데구탕(구역질 나는 늙은이)", "퓌탱 드 보슈(더러운 독일 놈)"라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그날 이후 틸레는 명백히 권력을 남용하여 우리 병실에 있던 편안한 변기통을 쓰려고 매일 저녁 우리 병실로 오는 습관을 붙였다. 그 변기통은 수용소 전체에서 유일하게 규칙적으로 관리가 이루어졌고 유일하게 난로 근처에 있었다.

그날까지 늙은 틸레는, 그러니까 내게는 낯선 자였고 따라서 적이었다. 게다가 그는 힘있는 자였으므로 따라서 위험한 적이었다.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다시 말해 수용소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다른 식의 해석이란 있을 수 없었다. 수용소에서 보낸 기나긴 한 해 동안 나는 수용소의 복잡한 위계 구조에 대해 조사해볼 기회도 호기심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사악한 힘을 가진 어두컴컴한 건물은 완전히 우리 위, 저 높은 곳에 있었고 우리의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었다. 그럼에도 자기 당을 위해 치렀던, 그리고 자기 당 내에서 치렀던 수없는 싸움으로 단단하게 굳어버린 늙은 군인 틸레, 수용소에서 보낸 10년간의 잔혹하고 불확실한 삶으로 돌처럼 굳어버린 틸레, 그가 바로 자유를 맞은 내 첫 밤의 동료이자 마음을 터놓을 벗이었던 것이다.

...

이윽고 밤이 되자 병든 동료들은 잠들었다. 샤를[과] 아르튀르도 순진무구한 잠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수용소에 들어온 지 불과 한 달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아직 나쁜 독이 들지 않은 것이다. 오직 나 홀로, 기진맥진해 있는데도 피로 그 자체와 병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지는 뻣뻣하고 피가 머릿속에서 발작하듯 요동쳐댔다. 열이 온몸을 침범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었다. 마치 둑이 무너진 듯, 모든 위협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순간, 생生의 편으로 돌아가려는 희망이 미칠 듯 간절한 것이기를 그만둔 바로 그 순간에 나는 더욱 거대한 새로운 고통에 압도되었다. 그것은 전에는 다른 절박한 고통들 때문에 의식의 가장자리로 밀려나 묻혀 있던 고통이었다. 그것은 추방과 이역만리에 있는 집으로 인한 고통, 고독과 잃어버린 친구들과 잃어버린 청춘, 그리고 주위에 널린 시체 더미로 인한 고통이었다.

부나에서 보낸 한 해 동안 나는 내 동료들의 5분의 4가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나는 죽음의 구체적 존재를, 죽음에 포위당한 고통을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죽음의 더러운 숨결이 한 발짝 떨어져 창문 밖에, 옆 침대에, 나 자신의 혈관 속에 도사리고 있는 고통을 당한 적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비참한 생각들에 잠긴 채 병든 몸으로 비몽사몽간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곧 누군가 다른 사람이 깨어 있음을 알아차렸다. 잠든 동료들의 무거운 숨소리에 더해, 꺽꺽하고 불규칙한 헐떡임이 기침과 꺼질 듯한 한숨과 신음 소리와 교차되어 간간이 들려왔다. 틸레는 울고 있었다. 노인의 힘겹고 염치없는 울음, 노인의 알몸처럼 견딜 수 없는 울음이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아마도 나의 움직임을 알아챘던 것 같다. 우리 둘 다 그날까지 각자 나름의 이유들로 원했던 고독이 나에게만큼이나 그에게도 무거웠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한밤중에 그가 나에게 "깨어 있나?"라고 물어왔던 것이다. 그러고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내 침상까지 힘들게 기어 올라오더니 마음대로 내 곁에 앉았다.

그와는 서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언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날 그 긴긴 밤에 가슴속에 들어앉은 생각들이 헤아릴 길 없고, 놀랍고도 끔찍하고, 무엇보다 혼란스러운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나는 향수로 인해 마음이 괴롭다고 말했다. 울음을 멈춘 그는 말문을 열었다. "10년, 10년 세월이야!" 침묵의 10년이 흐른 후, 한 줄기 귀에 거슬리는 기괴한, 동시에 장엄한 목소리로 그는 <인터내셔널가>를 부르기 시작했고, 심란해진 나는 미심쩍어하면서도 감동을 받았다. 

 

pp.28-29 아우슈비츠와 러시아식 목욕

부나에서는 '대수용소', 정확히 말해 아우슈비츠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없었다.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옮겨 다닌 해프틀링들은 아주 드물었다. 그들은 말수가 적었고(해프틀링은 누구나 말수가 적었다) 그다지 믿음이 가지도 않았다.

얀켈의 마차가 그 유명한 문턱을 넘어섰을 때 우리는 놀라 어안이 벙벙했다. 거주자 1만 2,000명의 부나-모노비츠는 여기에 비하면 작은 마을이었다. 우리가 들어온 이곳은 하나의 끝없는 거대도시였다. 목재로 된 단층 '블록'들이 아니라 벽돌이 그대로 드러난 사각형의 음침한 3층 건물들이 수도 없었고 하나같이 똑같은 모양이었다. 그 건물들 사이로 가로세로로 곧게 뻗은 포장도로들이 시선 닿는 데까지 끝없이 나 있었다. 모든 것이 황량하고 적막하고 낮은 하늘 아래 짓눌려 있었으며, 진흙으로 빗물로 포기로 가득했다.

그토록 긴 우리 여정의 매 굽이마다 그랬듯이 여기서도 우리는, 우리가 시급하게 필요로 하는 수많은 다른 것들이 있는데도 우선적으로 목욕을 한 다음에야 그것들이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러나 그것은 굴욕의 목욕은 아니었다. 기괴하고 악마적이고 종교 의식적인 목욕, 우리가 수용소 세계로 추락했음을 표시하던 그 목욕처럼 검은 미사의 목욕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개월 뒤 우리가 미군의 손에 넘어갈 때 실시된 목욕처럼 효과적인 것도, 살균을 위한 것도, 기술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러시아식 목욕이었고 인간적인 차원의 것이었으며 즉흥적이고 대충하는 식이었다.

당시 상태의 우리에게 목욕이 과연 적절한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목욕은 필요한 것이었고 달갑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목욕 속에는, 그리고 그 세 번의 잊지 못할 '씻음' 각각에는, 글자 그대로의 구체적인 기능 이면에, 하나의 거대한 상징적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영역 속으로 차츰차츰 우리를 빨아들이는 새로운 권력의 무의식적인 욕구, 우리의 이전 삶의 흔적을 벗겨내고 우리를 자신의 규격에 맞는 새로운 인간으로 만들려는 요구, 우리에게 자신의 표식을 찍으려는 욕구였다.

두 명의 소비에트 간호사들이 건장한 팔뚝으로 우리를 마차에서 내려놓았다. "포 말루, 포 말루!"(천천히, 천천히!) 이것이 내가 들은 첫번째 러시아 말이었다. 원기왕성하고 능숙한 두 여자였다. 그녀들은 수용소 시설물들 가운데 대충 수리된 한 곳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그녀들은 우리 옷을 벗기더니 바닥을 덮고 있던 나무 평상 위에 누우라는 몸짓을 했다. 그러고는 자비로운 손길로 그러나 민첩하게 우리 몸에 비누칠을 하고 문지르고 마사지를 하고 나서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물기를 닦아 주었다.

아르튀르가 자신을 '리브르 시투아양(자유 시민)'이라 선언하면서 자코뱅적 도덕주의에 입각한 항의를 여러 차례 한 것을 제외하고 일은 우리 모두에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르튀르의 잠재의식 속에서 이 맨살에 닿는 이성의 손길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금기들에 저촉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룹의 맨 마지막 사람 차례가 되었을 때 일은 심각한 난관에 부딪혔다. 

그가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 중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대머리에 몸집이 작은 그 남자는 포도나무 덩굴처럼 옹이가 지고 피골이 상접한, 모든 근육이 끔찍하게 수축되어 온몸이 오그라든, 한마디로 유령이었다. 간호사들은 마치 무생물 덩어리를 다루듯 그를 번쩍 들어 마차에서 내려놓았다. 이제 그는 바닥에 옆으로 누워 있었다. 이마가 닿도록 무릎을 구부리고 팔꿈치는 옆구리에 딱 붙인 채, 쐐기 같은 손가락을 양어깨에 대고서 필사적인 방어 자세로 딱딱하게 몸을 말고 있었다. 당황한 러시아 수녀들은 그를 똑바로 눕혀 몸을 펴려고 애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생쥐처럼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게다가 그의 사지가 힘에 밀려 늘어났다가도 손을 놓자마자 곧바로 원래 자세로 돌아가버리는 바람에 헛수고만 할 뿐이었다. 그녀들은 결정을 내렸고 그를 그 자세 그대로 샤워실로 데려갔다. 그녀들은 상부로부터 정확한 지시를 받았기에, 얽히고설킨 나무처럼 딱딱한 그의 몸타래 속을 스폰지로 비누칠을 하려 애쓰면서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해 그를 씻겼다. 마지막으로 미지근한 물 두어 통을 위에서 부으면서 꼼꼼히 그의 몸을 행구어주었다.

샤를과 나는 김이 나는 벌거벗은 몸으로 동정심과 전율을 동시에 느끼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한쪽 팔이 펼쳐진 순간 문신으로 새겨진 번호가 얼핏 보였다. 20만 번대라면, 그는 보주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봉 디외, 세 텅 프랑세!(맙소사, 프랑스인이잖아!)" 샤를이 말했다. 그러고는 조용히 벽 쪽으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