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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re incerta
프리모 레비,『주기율표』, 「아르곤」 우리가 숨쉬는 공기 속에는 이른바 비활성 기체라고 하는 것들이 있다. 이것들은 박식하게도 그리스어에서 따온 진기한 이름을 갖고 있는데, 각각 '새로운 것'(네온), '숨겨진 것'(크립톤), '움직임 없는 것'(아르곤), 그리고 '낯선 것'(제논)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들은 정말로 활성이 없어서, 그러니까 자신들의 처지에 만족하고 있어서 어떤 화학 반응에도 개입하지 않고 다른 원소와 결합하지도 않는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비활성 기체는 수세기 동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다만 '낯선 것'(제논)이 극도로 탐욕스럽고 활발한 플루오린과 잠깐 동안 결합하도록 하는 데 성공한 일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업적이 너무나 뜻밖의 일로 여겨져서 그 화학자..
대학에 갓 들어갔을 땐 폴 오스터가 유행이었던 것 같다.『달의 궁전』, 『뉴욕 3부작』, 『우연의 음악』,『신탁의 밤』 같은 작품을 줄줄이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제목이 다들 멋졌다. 뉴욕 여행 이후 문득 『뉴욕 3부작』을 다시 읽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뉴욕 3부작』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3부작 중 첫 번째인 「유리의 도시」를 읽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별로 읽고 싶지 않아졌다.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대니얼 퀸)인데, 그는 '윌리엄 윌슨'이라는 필명으로 '맥스 워크'라는 탐정에 관한 추리소설을 써서 근근이 먹고 산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폴 오스터'라는 탐정을 찾는 전화가 걸려 오고, 퀸은 잘못 거셨다며 전화를 끊는다. 끊고 나니 뭔가 사정이 있는..
https://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211679&custno=6935820
1. 「네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의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는 인간과 외계인의 조우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에서 외계인들의 우주선은 지구 궤도상에 느닷없이 출현하였고, 반원형 거울처럼 보이는 거대한 인공물들이 전 세계 지표면 위에 총 백열두 개나 나타났다. 그것들은 외계인과 지구인 사이의 쌍방향 통신을 위한 장치였고, 사람들은 그것들에 "체경looking glas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체경이 활성화되면 그 너머로 방 하나가 보였고, 이어 방문을 열고 외계인들이 등장하였다. 그들은 음성언어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부와 군 당국은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결국 언어학자 한 사람과 물리학자 한 사람으로 이루어진 팀을 각 체경마다 파견하여 외계인과의 의사소통을 시도하게 했다. 소설의..
스티븐 킹, 『고도에서』 전서희 옮김. 황금가지. p.95 "... 먹은 지방이 전부 콜레스테롤 수치를 엉망으로 만들 수 있지만 스콧은 그렇지 않을 거라는 신념이 있었다. 그의 몸은 벨트 위로 거짓말처럼 나와 있는 뱃살을 제외하면 생애 최고의 상태였다. 기분 또한 노라 케넌과의 교제가 한창이던 시절보다 좋았다." 스콧 캐넌에게 일생일대의 좋은 기분을 이야기하는 데 기준점이 되는 것은 전 부인 "노라 캐넌과의 교제가 한창이던 시절"이다. 끝이 난 관계에 가해질 법한 의식적/무의식적 가치 삭감의 위협을 넘어, (비록 이제는 그렇지 않을지라도)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최고였노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주는 '그 시절'에 대한 확고한 감각이 갑자기 나를 붕 뜨게 만들었다.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19.7. pp.215-217 이제 화이트헤드가 남아 있는데, 확실히 그는 라투르의 가장 가까운 철학적 조상이다. 그들의 유사점들은 명백할 뿐 아니라 중추적이다. 화이트헤드의 ‘존재론적 원리’는 도대체 무엇이든 간에 어떤 것에 대한 이유는 항상 어떤 특정한 현실적 존재자의 구성 속에서 추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베르그송도 수긍할 수 없고 들뢰즈도 도저히 수긍할 수 없을 원리다. 이 상황은 ‘과정철학’ 같은 어떤 단일한 표제어 아래 이 인물들을 모두 묶으려는 노력이 허술함을 예증하는 데 충분하다. 더욱이 라투르와 화이트헤드는 관계에 대한 큰 호감을 공유하는데, 화이트헤드는 관계를 ‘파악’이라는 용어로 지칭한다. 어떤 사물에 대해서 그것이 맺고 있는 관계를 제외하고 말하..
아담 스미스, 『국부론 (상)』,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p.160 14. 청년들을 근면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장기의 도제연한 제도는 젊은 사람을 근면하게 만드는 경향도 없다. 성과급으로 일하는 직인은 근면한데, 그 이유는 근면에 따라 이득을 얻기 때문이다. 도제는 게으르기 쉽고 거의 언제나 게으른데, 그 이유는 부지런해도 아무런 직접적 이득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저급한 직업에서는 노동의 재미는 오로지 노동의 보수를 얻는 데 있다. 노동의 재미를 가장 먼저 맛볼 수 있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노동에 흥미를 느껴 일찍부터 근면의 습관을 얻는 것 같다. 젊은 사람이 오랫동안 노동으로부터 이득을 얻지 못한다면 자연히 노동을 싫어하게 된다. 공공의 자선사업에 도제로 가난 소년들은 보통의 도제연한..
p.228-229 이는 마셜 매클루언이나 스튜어트 브랜드 같은 사람들이 꿈꿨을 법한 일이다. 네트워크, 즉 테크놀로지로 하나가 된 글로벌 커뮤니티는 사람들을 갈라놓는 차이점들을 없앨 것이다. 하나의 책이 다른 책 안으로 녹아들 것이며, 복사해서 붙여넣기와 내용을 빌려오는 일이 흔해지면서 한때 각각의 책을 구별지어 주었던 차이가 사라질 것이다. "흥미롭게도 전 세계를 아우르는 도서관은 아주 아주 아주 거대한 하나의 단일한 텍스트가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한 권의 책이 되는 것이다." 케빈 켈리 자신도 인정하듯, 이는 종교적 이상이다. 켈리는 미래를 "만물의 에덴동산"이라는 비유로 설명했다. 이 같은 원죄 이전의 이상에는 정치적인 귀결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세상의 책들이 아름다운 한 권의 책으로 녹..